말더듬 치료 체험기 게시판

이곳은 크리라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체험기를 올리는 공간입니다.

   
.. 완치선언글 : 나는 크리라에서 불가능의 벽을 넘었습니다.
.. 이소민 ()
.. 2003/6/26 (22:55) 8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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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글은 크리라 출신의 이소민 양이 "말더듬 세상 게시판(2003.6.26)"에 올린 체험기인데 참고하시라는 뜻에서 퍼다 놓았습니다. - 운영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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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가 이 게시판에 등장한 이후 가장 질문다운 질문을 받은 것 같군요. 감사합니다.

더구나 MIT의 '촘스키' 교수님은 금세기 최고의 언어학자요, 살아서 행동하는 지성인 중의 한 분인데, 그분의 존함과 같은 아이디를 가진 분의 질문을 받고 답을 하게 되다니, 참으로 영광 만만이군요.  

2) 부모님 말씀에 의하면 저는 초등교 취학전 어릴 때부터 말을 더듬어대기 시작했다더군요. 처음에는 막내딸이라서 응석을 부리느라고 그러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갈수록 말더듬 횟수가 증가하더니 첫 말을 심하게 반복했다고 하더군요.

놀리는 친구들에게 보복을 가하기 위해 태권도를 배웠는데 초등학교 4학년 때 1품을 땄어요. 아주 열심히 했어요. 내가 무슨 말만 하면 낄낄거리고 머리카락을 잡거나 놀리는 친구들을 두들켜 패겠다는 일념을 가지고 밤낮없이 주먹질 발길질을 해대고 다녔으니 참 웃기는 인생의 서막이었습니다. 우리 집 주변의 나무와 벽은 내 발길질로 인해서 성한 곳이 별로 없을 정도였지요.  

실제로 나를 놀리다가 쌍코피가 터지고 묵사발이 되도록 밟힌 남친들이 꽤 있었던 기억이 나는군요. 내가 어느 넘을 두들겨 팼을 때마다 나의 엄마는 이리저리 불려다니면서 곤욕을 치르기도 했지요.

나는 아빠께서 군장교였기 때문에 전학을 많이 다녔는데 전학을 갈 때마다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요. 내가 유단자인 줄 모르는 친구들이 꼭 내 말더듬을 흉내내면서 약을 올리니까 미치겠더군요. 손발이 먼저 날라가니까 꼭 사건이 터지고 마는 것이지요.  

양구, 화천, 문산, 양평 등지에 있는 학교의 교무실 바닥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손을 들고 있던 일은 참으로 지긋지긋하고 참혹한 추억들이었지요.

3) 사춘기 이후부터는 아예 말을 안 하려고 애를 썼지요. 꼭 필요한 말만 하되 안 되는 것은 돌려 말하고, 그게 안 되면 아예 말을 안하기로 작심하고 살았어요. 그 대신 공부를 열심히 했고, 합기도, 검도 등의 운동을 열심히 해서 유단자가 되었지요. 내가 몇 가지 무술의 유단자라는 사실을 아는 친구들은 나를 놀리거나 비웃지를 않더군요. 아무튼 나는 남들이 뭐라하든 내 할 일만 열심히 했어요.

학년이 바뀔 때마다 학과 담임 선생님들을 찾아 다니면서 저의 속사정을 일일이 호소하고 발표를 시키지 말아 달라고 말씀을 드렸지요. 그러나 말더듬이 뭔지조차 모르는 어떤 선생님은  그럴수록 자꾸만 발표를 해야 한다면서 일부러 나를 더욱 괴롭힌 경우도 있었습니다.

4) 발표하는 것 빼고는 그럭저럭 공부는 잘하는 편이라서 세칭 1류대학에 속한다고 보는 곳의 국어국문학과에 진학을 해서 다녔는데, 아 이건, 전공이 시작되니까 매일 발표, 발표... 발표의 연속이었습니다. 자존심이 상해서 속사정을 누구한테 이야기는 못하겠고,  날마다 불안과 불면의 밤이 계속되었습니다.

수면제와 안정제를 상습적으로 복용하게 되었는데 그게 무슨 해결책이 되나요.  참다 참다 못해 슬그머니 자퇴를 하고 말았지요. 아빠와 언니들은 난리였지만 나는 오히려 홀가분하고 무덤덤한 게 좋았지요.

학교를 그만 두고 나서는 외삼촌이 경영하는 치과에 가서 일을 거들면서 인생에 대해 고민하고 또 고민하게 되었지요.

5) 그후 학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ㅇㅇ대학교의 사회복지학과에 산업체 특별전형 형식을 통해서 입학을 해서 주경야독의 과정을 거쳤지요.

물론 그것도 중간에 휴학과 복학을 여러 차례나 반복하면서 다니다가 뒤늦게 겨우 졸업을 하긴 했지요. 말더듬이는 결국 공부도 인생도 더듬거리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형편이더군요. 더듬는 정도가 아니라 절뚝거리면서 살아가야 된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 모르겠군요.

발표하는 것이 하도 안 돼서,  발표 안 하는 대학교를 이리저리 찾다가 방송대학교를 두 례나 입학(한 번은 법학, 한 번은 유아교육학)을 해서 다녔지만 그것도 중도에 때려 치웠습니다. 평소에는 피둥피둥 놀다가 출석 수강 때만 열심히 하려고 하니까 도대체 공부가 되겠습니까?  

그래서 결국에는 다시 사회복지학과에 복학해서 이를 악물고 다니다 보니까 졸업을 하게 됐지만 남다른 무슨 즐거움 따위는 없었지요.       

6) 그 동안 멀더듬 교정을 하려고 돌아다닌 곳도 무수히 많았습니다. 엄마손을 잡고 여기저기 끌려 다닌 것은 말할 수도 없고, 내 스스로도 여기저기 다니면서 별 이상한 발성방법, 호흡방법 등을 두루 체험해 보았지요.

한약도 꽤 먹어 보았구요. 머리를 맑게 한다는 한약, 정을 보한다는 한약, 기를 보한다는 한약, 신을 보한다는 한약... 지금까지도 한약 냄새가 내 몸에서 배어 나오는 것 같은 착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이비인후과, 정신과도 여러 군데 가 보았고, 체면 치료한다는 곳도 가 보았지요. 참으로 호화찬란한 경력인지 얼룩인지, 뭔지 모를 정도로 내 말더듬의 이력서는 복잡다단합니다.

7) 다시는 안 속겠다고 다짐을 하고, 또 다짐을 하고 포기하면서 살아가던 중,  작년에 이 말더듬 게시판에서 크리라에 대한 글을 접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홈페이지의 모든 글들을  정독하다가 2002년 10월 중순경에 '크리라'를 찾아가서 장철진 원장님을 만나 상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장 원장님을 만나뵐 때의 내 상태는  첫 말 막힘이 무지무지하게 극심한 상태였습니다. 사춘기 이후부터는 아예 말 자체가 안 나오는 상황이 많았습니다.

그런 상태를 가지고 찾아가 상담하던 그 자리에서  말더듬에 대한 기존의 내 인식과 고정관념은 완전히 뒤집어지고 말았습니다.  나의 말더듬 상태에 대한 장 원장님의 점검과 진단, 평가, 대책 등을 듣고, 여러 가지 오시범과 정시범을 보는 순간 말더듬의 실체가 아주 객관적으로 드러나 보이더군요.

더구나 장 원장님의 자신감과 패기만만 상담 자세, 잘 생긴 외모, 차리리 오만하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욱 잘 어울릴 정도로 매끈하고 논리정연한 학문적 이론과 지식, 거기에다가 7시간 동안, 말더듬이 발생하게 되는 원리에 대한 설명과 해결책을 들려주시는 동안, 어쩌면 그렇게 단 한 차례도 더듬거나 헛말이 한 군데도 없이, 카랑카랑하고도 낭랑한 목소리에, 청산유수처럼 흘러나오는 달변의 솜씨를 보여줄 수 있을까, 그것도 간간이 유머 실력을 유감없이 과시하면서 ... 나는 그날 너무나도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확신이 생겼습니다. 나도 장 원장님처럼 말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야 말겠다는 욕망의 불길이 가슴속에서 활활 타오르는 것을 금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 즉시 은행에 가서 돈을 찾아 가지고 와서 수강신청을 마쳤습니다.

그후 나는 장 원장님으로부터 조음음성학, 음운론, 발성론, 청각언어학, 인지언어학, 신경언어학, 대뇌 심리학, 형태론, 통사론, 화용론, 국어정서법, 화법론, 유머 스피치, 논리언어학, 대중 스피치28계론, 설득스피치, 정보전달 스피치, 환담 스피치, 비즈니스 스피치, 선동 스피치, 웅변 등등의 과목을 개인지도 형식을 통해서 소개를 받기도 하고, 어느 분야는 깊이 있게 강의를 듣기도 했지요.

이렇게 여러 가지 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은 이유는 당시 제 꿈이 스피치 강사가 되는 것이었거든요.

첫 강의만 크리라에서 받았고, 두 번째부터는 매주 일요일 13시부터 19시까지 장 원장님께서 섬기는 교회의 교육관에서 받았습니다.

약 2개월간에 걸쳐  강의를 들었고, 훈련은 자가훈련을 하되 매주 훈련 방법과 진척되는 상태를 보면서 수정지도를 받는 방식을 취했습니다.

한 3주가 지나면서부터 자동적으로 통제가 이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두 달간의 개인지도가 끝날 무렵에는 더듬어지는 일이 완전하게 없어졌습니다. 어쩌다가 더듬어지는 경우가 있다면 그것은 말더듬과는 무관한 어휘사용 착오나 조음착오 때문이었습니다.

그후부터 지금까지 말더듬이나 말막힘 때문에 고민하거나 불안해 한 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장 원장님께 가르쳐주신 방법과 이론적 지식들에 대해서 우선  100% 이해를 하려고 무진장 애를 썼고, 또한 장 원장님께서 가르쳐주신 방법을 내 몸에 적용시키기 위해서,  말 그대로, 정말 피눈물 나는 훈련을 거듭했거든요. 잠자는 시간 빼놓고는 오직 훈련에 훈련만 거듭했지요. 목숨을 걸고 훈련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습니다.

그 결과 막힐 때가 없었고, 항상 시원시원하게 말소리가 터져 나오게 되었습니다. 내 몸의 상태, 즉 발동부와 발성부와 조음부의 작동상태가 잘 움직이는 기계처럼 착착 맞아 떨어지는 느낌이 너무나도 좋아서 처음에는 날마다 눈물을 흘리면서 행복해 한 적도 많았습니다.

특히나 파공성 발성법은 나의 횡격막과 성대를 완전히 개량시켜서 최선의 상태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8) 지금 생각해 보면 목숨을 걸고 훈련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 장 원장님께서 강의하시는 이론적 지식과 실기 방법에 완전히 통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완전 통달을 하기만 한다면 훈련이고 뭐고 다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뭔가 제대로 이해를 못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완전히 벗어나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훈련생들은 자신의 훈련방법과 진척 상태, 몸의 느낌 등을 주제로 장 원장님께 상의를 구하고 자꾸만 괴롭혀야 됩니다.

확신이 안 오는데도 아무런 질문을 하지 않고 모양만 갖춰서 흉내만 내는 식의 훈련을 하면 안 됩니다.

9)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말더듬이라는 것은 정상인들과는 다른 호흡방법, 발성방법, 조음방법을 적용하면서 목소리와 말소리를 생성해내려고 하는 잘못된 습관적 행동, 또는 그 결과라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 말더듬을 교정하려면 정상인과 똑같은 호흡방법과 발성방법과 조음방법이 적용될 수 있도록 몸의 시스템과 메커니즘을 바꿔주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방법들이 언제 어디서나 그 어떤 상황하에서도 동시형응을 이루는 상태로 '습관화, 체질화, 자동화, 조건반사화' 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10) 내 경우는 장 원장님과 내 엄마의 권유를 받아들여 교회나 기도원에 다니면서 죽어라고 부르짖어 기도하고 성령님의 불을 받은 체험을 쌓은 것이 예기불안과 예기동작을 완전히 몰아내는데 아주 큰 몫을 차지한 것 같습니다.   

11) 제가 요즈음 출국 준비 등으로 인해서 시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긴 글을 드리지 못하고 대충 흐름만 표기했으니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이후로는 이 말더듬 세상에 와서 노닥거린다거나 이런 글을 쓸 기회가 없을 것 같군요. 오늘도 시간이 있어서 이러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12) 누구든지 구체적인 교정방법을 알고 싶으면 내 사부님을 찾아가서 상담해 보시기 바랍니다. 찾아뵙는 그 순간부터  5분도 안 지나서, 말더듬에 대한 자신의 잘못된 편견과 무지와 고정관념이 와르르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12) 촘스키님과 말더듬 세상의 친구 여러분의 성공과 승리를 제가 믿는 하나님께 부탁드리면서 저의 체험기를 마치고자 합니다.

오자나 탈자는 새겨서 읽어 주시고 추가적인 질문이나 토론은 사양하겠습니다.  크리라에 가보면 다 알게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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